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겨울, 노트르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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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2월 말, 파리 거리는 비가 내렸거나 비와 눈이 내렸던 것 같다. 지금도 떠올리는 이 날의 노트르담 광장은 하늘이나 주변 건물이나 성당이나 길바닥이나 모두 석회색, 물먹은 회색빛 이미지로 남아있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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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셋은 이 날 오전 노트르담 대성당에 도착해서 구경하고 있었다. 우리 중 아무도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안내판에 적힌 내용엔 관심도 주지 않았고, 그래서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미사 시간이었으며 성당 내부에서는 미사 중에 관광을 허용하는 대신 정숙해야 한다는 것도 육중한 문 안에 있는 내부로 이어지는 양 옆의 문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알았다. 내 일행 두 사람은 방해가 되지 않게 멀찍이서 구경하겠다고 했고, 나는 미사 보고싶다고 앞으로 나아가 장의자 빈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.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마지막까지 듣다가 성체를 모시고, 파견성가가 끝난 뒤에도 자리에 남아 있었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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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사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도하고 있던 노인. 그가 입고 있던, 날씨와 다른 흰색 패딩.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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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행에게 돌아가서 좀 이야기하고 성당을 더 둘러보다가(아마 그랬던 것 같다) 시선을 뗄 수 없었던 어느 여성 분. 제대에서 가장 가까운 가운데 앞자리에 엎드려 기도하고 있던 모습. 멀리 있었기에 뭐라 기도 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흐느낌을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고,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우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. 무엇을 위해 저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나. 나는 알 수 없다. 처음 그 모습을 보던 내가 가족이 위독한가, 남자친구가 아픈가, 하는 어린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. 몇 분 쯤 지났을까. 그렇게 긴 시간 한 사람을 내가 빤히 쳐다보고 있기만 했나. 무어라 공지하는 방송 혹은 경비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, 아마 제대 앞 접근을 금지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. 그러자 그 여자는 엎드려있던 본인 몸의 옆에 내팽겨쳐있던 크로스백을 홱 낚아채면서 일어나, 제대 양 옆으로 벽감에 모셔진 성인 상으로 향했다. 서둘러 이동해서 그 성상 중 가장 가까운 곳 하나 앞에 다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. 기도가 단 1초라도 중단되면 안되기라도 하는듯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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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트르담 성당 앞에 있는 광장에 서 있던 나를 기억한다. 성당 입구 앞으로 조금 가면 돌벤치 같은 것이 있다. 거기 앉아있던 나, 저 성당을그려보고 싶다, 하지만 너무 추워서 손 시리겠는걸, 내 일행이 기다린다, 이런 생각만 하다가 눈으로 그 장면을 담고 몸과 인상으로 그 순간을 느끼고 돌아왔던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