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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쩌다 시를 몇 편 읽게 됐는데

좋다

 

 

 

 

바람부는 날이면 압구정동에 가야한다1
- 어떤 배나무숲에 관한 기억

유하

압구정동에 겨울-나무로부터 봄-나무에로라는 카페가 생겼다. 온통 나무 나무로  
인테리어한 나무랄 데 없는······그 옆은 뭐, 매춘의 나영희가 경영한데나  
시와 포르노의 만남 또는 충돌······ 몰래 학생 주임과의 충돌을 피하며 펜
트하우스를 팔고 다니던, 양아치란 별명을 가진 놈이 있었다. 빨간 책과 등록금  
영수증을 교환하던 녀석, 배나무숲 너머 산등성이 그애의 집을 바라볼 때마다 피
식, 벌거벗은 금발 미녀의 꿀배 같은 유방 그 움푹 파인 배꼽 배······배나
무가 바람에 흔들리던 밤이면 옹골지게 이은 배가 후두둑 후두둑 녀석은 도둑고양
이처럼 잽싸기 주워담았다. 배로 허기진 배를 채운 새벽, 녀석과 난 텅 빈 신사동
사거리에서 유령처럼 축구를···해골바가지···난 자식아, 여기 최후의 원주
민이야 그럼 난···정복자? 안개 속 한남동으로 배추 리어카를 끌고 가던 외팔
의 그애 아버지···중학교 등록금···와르르 무너진 녀석의 펜트하우스, 바람
부는 날이면 녀석 생각이 배맛처럼 떠올라 압구정동 그 넓은 배나무숲에 가야했다
. 그의 18번 김인순의 여고 졸업반 휘파람이 흐드러진 곳에 재건대원 복장을 한
배시시 녀석의 모습 그 후로부터 후다닥 梨田碧海 된 지금까지 그를 볼 수 없었
다. 어디서 배꽃 가득한 또 다른 압구정동을 재건하고 있는지···바람부는 날이
면 배맛처럼 떠오르는 그애 생각에 배나무숲 있던 자리 서성이면··· 그 많던  
배들은 누가 다 먹었을까 그 수 많은 배들이···지금 이곳에 눌러앉은 사람들의
배로 한꺼번에 쏟아져들어가 배나무 보다 단단한 배포가 되었을까···배의 색
깔처럼···달콤한 불빛, 불빛이 더부룩 한···싸늘한 배앓이···바람부는  
날이면···  

 

 

 

 

 

 


비가 와도 젖은 자는

오규원


강가에서
그대와 나는 비를 멈출 수 없어
대신 추녀 밑에 멈추었었다
그 후 그 자리에 머물고 싶어
다시 한번 멈추었었다

비가 온다, 비가 와도
강은 젖지 않는다. 오늘도
나를 젖게 해놓고, 내 안에서
그대 안으로 젖지 않고 옮겨가는
시간은 우리가 떠난 뒤에는
비 사이로 혼자 들판을 가리라.

혼자 가리라, 강물은 흘러가면서
이 여름을 언덕 위로 부채질해 보낸다.
날려가다가 언덕 나무에 걸린
여름의 옷 한 자락도 잠시만 머문다.

고기들은 강을 거슬러 올라
하늘이 닿는 지점에서 일단 멈춘다.
나무, 사랑, 짐승 이런 이름 속에
얼마 쉰 뒤
스스로 그 이름이 되어 강을 떠난다.

비가 온다, 비가 와도
젖은 자는 다시 젖지 않는다.